글 방

열어 주세요

삼홍김기덕 2013. 7. 6. 18:11
  열어 주세요
             김기덕
누구세요 아래층인 데요
문 좀 열어주세요.
나 안 뛰어다녔는데
왜지~
저 어제 이사 왔어요
떡 좀 가져왔네요
아~ 네
잘 먹겠습니다.
열 시가 통근시간인 아이가
11시가 넘어서 집에 와서는
문 열어 달라고 합니다.
결국. 열어 줄 거면서
동내 시끄럽게
한참 실랑이하다가 열어 줍니다.
요즘도 그렇지만
옛날에도 힘 있는 사람이
열쇠를 독차지했습니다.
열어 두면 사고라도 생길까 봐
열쇠를 두 개 세 개 식 채우기도 합니다.
엄니는 사십이 넘어서야 시어머니에게
고방 문 열쇠를 넘겨받았다고 합니다.
엄니 몰래 고방에 들어가서 곶감 훔쳐 먹다가
갇힌 적도 있었지요
많이 열어야 좋은 것이
열매라면
많이 열면 안 되는 것이
문어발식 가게입니다.
열어주어야 그 무엇이 들어오는데
너무 열어 탈 나면 누가 책임지나요
열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.
집에 가면 방문을 열고~ 옷을 갈아입고
창문을 열고~ 청소를 하고
욕실 문을 열고~ 샤워도하고
냉장고 문을 열고~과일 하나 내어 먹고
쌀통을 열고~쌀을 내어 씻고
밥솥을 열고~ 쌀을 안치고
메일을 열고~ 사진도 보내고
옷장 서랍을 열고~ 말려둔 옷을 넣고
열고 열고 열어야 하는 것이 많이 있어요
장마 중에 하늘이 열렸네요
마음에 눈을 열고 사물을 보아야 아름다운 것을 볼 수가 있고
마음의 귀를 열고 자연의 소리를 들어 봐야 아름다운 음률을 들을 수 있네
지난해 농활 갔다 얻어온 고추 두 포기 중에 한 포기는 죽고
한 포기는 살아서 고추가 주렁주렁 열었네요
저녁에 몇 개 따서 찍어 먹어야지롱
2013년 7월 6일 5시50분에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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